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 길, 막연한 환상으로 시작하다

신밧드의 모험 2023. 3. 28. 21:35

퇴사, 준비, 출국

 

왜 일까.

회사를 그만두는 큰 이벤트를 앞두고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여행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들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결심했다.

관련 동영상을 여러번 보고, 여러 준비물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왜 굳이 몸 고생이 심할 것 같은 이것에 흥분하게 됐는지

애써 의미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단지 몸을 혹사시키는 무언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변태가 틀림없다.

백수는 처음이라

돈을 최대한 아끼는 방향으로 계획을 짠다.

돈을 아끼는 방법으로 아래의 방법을 선택했다.

  1. 의료보험비를 내지 않기 위해 부모님 댁으로 전입신고를 했다.
  2. 월세방을 정리하고 짐만 시골 창고에 보관하였다.
  3. 국민연금 납입 중단을 신청했다.
  4. 고배당 주식/ 소소한 월세수익으로 월 150만원 정도의 고정 수입을 만들어 놓았다.
  5. 항공료는 10년간 쌓은 항공 마일리지로 대부분 충당하였다.
  6. 숙박료를 아끼기 위해 호스텔을 주로 이용하였다.

해서 대충대충 싸모아 출국준비가 된 모습이다.

아직도 10년 다닌 회사 지인들과 송별회를 한지가 엊그제 같아

미련, 아쉬움, 고마움과 같은 감정의 잔상들이 남아 있다.

30일을 넘게 배낭을 지고 걸어야 해서 배낭은 가벼워야 했지만,

또 30일 이후에 다른 여행을 이어서 할 것이어서

노트북, 카메라 같은 필수 아이템을 빼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민을 참 많이 했다.

결국 노트북 대신 태블릿pc로,

대형 미러리스카메라 대신 고프로로 가져가는 선택을 했다.

신발도 새로 샀다. 유투버들을 보니 거의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저 살로몬 운동화를 신고간다고해서

큰 맘먹고 하나 구입했다.

인천공항의 아시아나 비즈니스 라운지..

출장때 맨날 긴장이 가득찬 상태에서 이용했던 라운지인데, 이제는 너무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운 좋게도 아시아나에서 다이아몬드 자격을 1년 더 연장해주는 바람에

스타얼라이언스의 골드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유럽과 동남아시아는 뭐니뭐니 해도 스타얼라이언스가 최곤데,

이제 곧 아시아나가 대한항공과 합병된다하니 참으로 아쉽다.

다이아몬드 고객들에게는 이렇게 옆자리를 비워서 발권해주기도 한다.

사랑해요 아시아나 ㅠㅠ

프랑스로 던져짐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뿐인데

어느덧 어색한 프랑스로 떨어졌다.

 

빵집에 앉아 한 참 동안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 걸 쳐다 봤다.

회사에서는 10분이 참 쏜살같이 지나갔는데, 하루를 10분단위로 계획해서 보냈는데,

다른 사람은 바쁘고 나만 느긋해진 이 순간이 오묘하다.

이렇게 평일 아침에 계획 없이 앉아 있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무언가 안도되는 느낌이랄까...

파리를 걸어보았다.

일단 산티아고를 가는 길 중 가장 대표적인게, 파리를 통해 바욘 - 생장데포르로 기차를 타고 이동한 다음

생장데포르에서 부터 피레네산맥을 넘음으로써 day1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첫날은 파리에서 간단한 관광을 하는 것이 좋다.

파리에서 바욘으로 가는 기차는 이렇게 쾌적하다.

생장데포흐 도착, 드디어 산티아고 여정의 day 1

생장데포흐를 도착하면, 일단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리는대로

우르르 같이 몰려가면 된다.

그러면 어떤 사무실 문앞으로 길게 줄이 늘어서 있는데, 그곳이 산티아고 여권을 만드는 오피스이다.

오피스에서 여권을 만들어주고,

그곳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나면

고맙게도 오늘 잘 곳을 예약했냐고 물어봐준다.

잘 곳이 없다고 하니, 빈방이 있는 알베르게 하나를 알아봐주었다.

알베르게를 들어가보니

안에서 어떤 여성두분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고는

형식적이지 않은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방을 안내해주었다.

내가 저녁을 미리 예약해놓지 않은고로

저녁 만찬에 참석할자리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 여성은 나에게 자리를 하나 마련해주었고

그곳에서 우리는 첫 여정을 같이 할 그룹과 서로 인사하고 와인을 마시며 친해졌다.

하나 하나 돌아가면서, 이 여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연들을 듣고나니

참 사람들은 다양하게 사는 걸 느꼈다.

참 다양하다. 모두 각자의 큰 고민들을 머리에 지고 왔겠지만

테이블 위에 다 같이 툭 털어놓으니 그냥 one of many가 되어버려서 인지

각자의 고민들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다.

드디어 시작이다.

컴컴히 불꺼진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잘 할 수 있을까.

잘 걸어갈 수 있을까.

걷다가 똥이 마려우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