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보수의 끝판왕, 오만

신밧드의 모험 2025. 2. 27. 00:17

2015.7

 

오만은 대영제국 시절 속국으로 존재하다가 1950년 정도 무렵 무스카트 오만의 술탄이 영국과 상의 후 이 지역을 다스리기로 결정하기로 한 이후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춘 곳이다. 나도 중동쪽 출장은 처음인지라 멍청했던건지 이 더위에 양복을 입고가서 땀으로 홀딱 젖어 옷을 버리게 되었다.

 

오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중동 국가들 중에서도 매우 외딴 곳에 속하고 정치적으로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일명 '혼자 노는'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오만이라는 국가가 무스카트 술탄이 침을 바르고 이 땅에 들어선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심지어 인도의 카스트 제도같은 노예제도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남아 있을 정도로 극도로 보수적인 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술을 못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이것은 사우디 아라비아로 출장갔었던 동료들의 고충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오만 항만청의 고객을 대면했을 때 그 흔한 미소 하나 던져주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를 태우는 걸 보고, 아 오만사람들은 오만해서 오만이구나라는 걸 금새 알 수 있었다. 

 

우리를 에스코트했던 오만측 에이전시 A씨가 머쓱했는지 서둘러 미팅을 끝내고 오만의 왕궁을 보여주겠다며 간단한 관광 일정을 제공해주었다. 왕궁 안에는 진짜 현대판 하인으로 보이는 (아마도 누비아족들일 듯) 사람들이 흰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치렁치렁 입은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부채를 부쳐주었다. 그리고 왕궁 근처에는 페르시아왕자 컴퓨터게임에서만 보아왔던 동글동글한 현지인들의 집 들이 있었는데 정말 페르시아 왕자에서 나온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어차피 모든 국가기관의 의사 결정이라는 것이 이 왕궁안에 있는 높으신 한 두 분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 '고객'에게 많은 에너지를 쏟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는 무스카트의 한가운데서 연실 페르시아만에서 세계 곳곳으로 석유를 실어 나르고 있는 유조선들을 한 없이 바라보았다. 바닷길의 힘이 느껴진다. 마치 하늘과 같이 광활해서 어느 나라든 빠르게 갈 수 있고 그래서 왜 미국이 해군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항구를 확보 못한 러시아가 북쪽에서 웅크려 있는지, 어떻게 세상의 부품들이 서로 오가며 완제품들을 만들 수 있는지... 머리로만 알 던 것이 오만의 바닷바람 한 번 휑하고 불어오던 그 순간에 번뜩 이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