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해외 여행, 첫 비행기 to the 뉴질랜드
이 무렵 사진들을 보면
처음 비행기를 탔던 설레임이 어땠는지 지금도 느껴진다.

환승은 어떻게 하는지..
짐은 누가 훔쳐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과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들
(그러나 몇 달 후였나.. 실제 내가 탔던 말레이시아 항공기의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해서 그 첫 경험?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15년 전의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더라
아 소싯적 그 시절 그립다.. ㅠ.ㅠ



우선 기내식을 잘 먹고 있는 어느 동양계 외국인에게 말을 걸어봤다
나 : hi
외국인 : ??? what?? (잘 못 들음)
나 : (당황 & 얼굴 빨개짐) may I ask something ?
외국인 : oh ! i see. but im eating now, maybe later
나 : ok
뭐 이런류의 시작이었는데
마음이 착한 이분이 말을 잘 들어주고
내 여행노트에 bon voyage!! 라는 글도 써주고 친해졌다.
낯선땅을 처음 밟는 와중에 그곳이 뉴질랜드였으니
그 느낌이야 말로 청량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갖 것이 푸르고 상쾌하고 깨끗해서
자잘자잘한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사진을 찍었다.



와 버스가 왤케 깨끗해 .. 해서 찰칵
새가 안도망 가네?? 해서 찰칵
횡단보도에서 소리가 나네..? 해서 찰칵

길 건너 외국인이 이런 나를 보고 웃는다
나랑 눈이 마주치고는 친절하게 웃어준다
참 매너가 좋더라. 내가 민망 할 까봐 그냥 웃어주는거
뉴질랜드에는 이미 내 고향친구가 먼저 와 있어서
그 친구네 집에 짐을 풀고 3개월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거실에 빨래건조대를 하나 갖다놓고 그 건너에 매트리를 놓고
나와 친구가 거기서 자고
일본인 여자애들 2명과 한국인 여자애들 2명이 각각 방을 쓰며
우리는 한 집에 살았다.
사실 그들과 우리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특히 한국외대 다니는 여자애랑 성대 다니는 여자애는 우리가 거기서
한국어를 쓰는걸 너무 싫어했다.
그 들은 어학연수를 하러 온거 였는데 한국어를 쓰니까 인상을 찌뿌렸다.
그랬었는데 2개월 정도가 지나니
나중에는 지가 알아서 한국 드라마 빌려다 보고
우리랑 맥주 마시러 가자고 그러더라..
머나먼 타지에서 한국말도 못하고...외로운거였지 ㅋㅋㅋ
나는 이곳에 현지 교회를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째저째 연락을 해서 찾아간 교회는 매우 '가정식' 이었다

말그대로 누군가의 집을 집회소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 새로웠다.



그리고 이런류의 공원 파티며
저녁에는 어떤 성도가 초대를 해줘서 가서 얘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초대 교회의 모습들이 이렇게 가정 위주의 모임 이었다고도 어디서 들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정말 자유롭게 사는거 같다
한번은 한 교회분이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 주는 길에
바다를 보더니 수영을 하고 싶다며
갑자기 옷을 훌렁훌렁 벗더니 수영을 하기 시작...+.+
그리곤 대충 닦고 다시 돌아와서 운전을 하더라..

암튼 차로 잘 데려다 주고 그래서 내가 뭐라도 대접해줄려고 했는데
영어를 잘 못하는 내가 어버버 하는 사이 이분이 먼저 나에게
피쉬앤칩스를 사주셨다 (사진 뭔지 알아보지도 못하는거는 용서바람)


그리고 한번은 나를 자기집으로 초대까지 해주셨는데
그때는 친구를 같이 데리고 갔다.
근데 집이 너무 좋아 ㅇ_ㅇ



저녁을 얻어먹고 돼지같은 고양이와 한바탕 놀아주고 난 후에
그집 바로 뒤편에 있는 mt. eden 일명 에덴동산을 소화도 시킬겸 올랐다
낮지 만은 않은 산이라 숨도찬데
어디선가 소똥 냄새가 구수하게 난다.
한국과의 동질감을 잠시 느끼다가,
정상에서 오클랜드 시내전경을 보았을때 다시 뉴질랜드구나 정신을 차렸다.
정말 코발트색 바람이 부는 듯이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 +.+
우리 넷은 별 말도 없이 사진을 찍고 찬송가도 부르고 하며
저녁 불빛들이 사라져가는걸 지켜보다 내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