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노트

데이비드 봄(David bohm)의 숨겨진 질서

신밧드의 모험 2025. 3. 6. 19:22

파푸아에서 찍은 은하수, 2024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양평에서는 밤하늘이 유난히 가까웠다. 늦은 밤 시골길을 따라 교회에서 돌아오며 하늘을 올려다 보면 별들은 함박 손에 닿을 듯 또렷했다. 그때의 나는 별을 보면 이런 느낌이 들었다. 검푸른 장막이 우주를 덮고 있고, 그 검은천에 난 수많은 작은 바늘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고... 그래서 밤 하늘을 보는 나의 시선은 주로 검은 '배경'에 더 머물러 있곤 했다.

 

한 20년쯤 지났을까 내 나이 서른 중반쯤 그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과학자를 알게 됐다. 그 과학자는 말했다.

"밤 하늘의 주인공은 별이 아니라 더 많은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어둠이며, 별들은 그저 거품처럼 부유하는 파편들이다"
어둠이 바다라면 별들은 잘게 부숴진 거품 정도이고 또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인 우리들은 모두 거대한 '하나'라고 설명하는 그 과학자, 양자이론의 거장 데이비드 봄의 이야기이다.

 

데이비드 봄 1917 - 1992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고 태어나는 질문이 있다.

"우리의 존재는 어떤 의미인가"

태곳적부터 인류는 신을 통해 그 답을 찾으려 했고, 근대 이후로는 자연을 관찰하며 과학이라는 도구로 진리에 닿고자 했다. 한때, 고전 물리학은 인간이 마침내 신의 비밀을 풀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주었다. 뉴턴의 법칙이 세상을 정밀하게 설명했고, 아인슈타인의 E=MC²가 밝혀진 후, 인류는 마침내 달에 발을 디뎠다. 우주는 숫자로 측정되고, 수식으로 통제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고전 물리학의 신봉자들을 당혹케 하는 여러가지 발견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고전적 물리법칙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오히려 모순을 일으키는 과학적 실험들이 그것이었다. 대표적으로 빛의 양면성에 대한 이중슬릿 실험에서 이 놈의 빛이 마치 살아있는 것 처럼 관찰자가 있으면 입자로, 관찰자가 없으면 파동으로 그 성질을 바꾸는데 도무지 어떠한 사유로도 풀 수가 없었다.

 

20세기는 전쟁과 이데올리기 대립으로 지구에는 많은 비극들이 일어났지만 또 한편으로는 풍요로운 자원을 바탕으로 많은 실험들과 연구들이 이루어진 인류사의 진보적인 한 단락이었다. 한국이 일본에 점령당해 홍역같은 핍박을 받는 중에도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에서 아인슈타인과 데이비드 봄, 닐스 보어, 오펜하이머와 같은 과학자들은 중심으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전개시켜 이 지구와 우리의 존재를 이해하는데 큰 힌트를 남겼다. 

 

우리에게 상대성이론으로 많이 알려진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의 기초를 만든 닐슨 보어의 논리와 근본적으로 맞닿지 않았다.  데이비드 봄이 그의 생의 후반기에 전체성이론과 비국소성 이론으로 그것을 설명하기 전까지 상대성이론은 완전체로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데이비드 봄의 자료를 살펴보면 꼭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과학자로서 수학문제를 푸는 관점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존재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 바로 우리의 모습을 반사해 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현대판 갈릴레오 갈릴레이

 

봄이 미국에서 이단아와 사회주의자로 몰린 것은 1945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무렵 미국의 반공산주의 매카시즘이 일어날 무렵이었다. 봄의 연구과제 중 하나는 '금속을 이루고 있는 개별 전자들의 자유도'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를 행동학적으로 적용하여 '사회주의 체계안에서 개인의 자유도'로 대입한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 논문은 당시 정치권에서 러시아와 내통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정치권의 움직임에 부담을 느낀 동료 교수들과 학교는 봄을 학교에서 내쫓고, 나아가 미국에서 추방이 되기 까지에 이르렀다.


데이비드 봄은 그러나 그 이후에도 왕성한 학문적 호기심, 존재론에 대한 인간적 투쟁의 일환으로 브라질에서도 논문 활동을 이어갔는데 자신의 박사학위 교수였던 오펜하이머에게 논문을 보내어 토론의 장을 열고자 하였으나, 오펜하이머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어이없게도 데이비드 봄의 논문을 짬처리하고 이단아 취급을 함으로써 미국의 주류 과학자들로부터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 때 오펜하이머에 의해 짬처리된 논문이 바로 1990년대에 들어서야 빛을 보게 된 '비국소성 이론'이었다.

 

 

그러나 진리는 사람의 손으로 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봄이 정치적으로 학술적으로 졸지에 이단아가 된 이후, 봄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에 빠졌고 예전과 같은 연구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 봄의 여정에는 더 의미 있는 동반자가 생겼는데 그는 인도의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이다. 봄과 그는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실체(Underlying reality)가 있으며 이는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 접힌질서를 보어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으로 결론을 냈지만 아인슈타인과 봄은 밝혀 낼 수 있다고 믿었다.

 

크리슈나무르티, 인도 1895 - 1986

 

인간의 의식은 개별적인 인간의 것이 아닌 전체적인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며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더 깊은 층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 근본적인 실체는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전체성의 성격을 띄며, 의식(마음)을 고요히 들여다 보는 방식으로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봄의 이러한 접근은 1990년 그가 사망한 후 동료 과학자들에 의해 검증되고 있다. 한 금속에 붙은 전자의 자유도는 한 곳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금속 전체에 영향을 주고 그것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는 비국소성의 이론과, 의식과 물질은 본질적으로 같다라는 이론, 그 동안 빈 공간인 줄만 알았던 우주의 공간안에는 엄청난 양의 토션파가 흐르고 있고 이 토션파는 정보를 전달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이론 등을 증명하는 실험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가령, 심해 잠수함에 새끼 토끼들을 싣고가서 한 마리씩 죽이는 과정에서 죽이는 그 순간 육지에 있는 어미 토끼의 뇌파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관측된다든지, 일명 '물은 알고있다'의 실험에서 물 속에 넣은 글자의 긍정/부정성에 따라 물의 입자가 아름답게/무섭게 현미경으로 관찰되는 실험등이 그것이다.

 

일본의 과학자에 의해 처음 실행된 의식과 물입자의 연관성 실험

 

그리고 그는 2010년이 넘은 즈음, 그의 이론들이 후속 연구로서 검증이 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이단 과학자로서의 낙인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다시 그의 사유를 꺼내고 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사람들의 인식도 그에 맞게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신기하다. 2010년엔 미국의 TV쇼 빅뱅이론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양자역학의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대중들은 그러한 개념을 금방 받아들였고, 또 대학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현상'인 양자역학이 정규 수업으로 채택되기도 하며, 명상을 하는 것에 대한 의미가 철학에서 과학으로 확장되어 사회적인 유행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구글과 IBM은 양자컴퓨터 까지 만든다고 하는데 이러한 변화가 불과 10년 안에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인류는 구분된 사회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다. 구분되고 효율화 된 드러난 3차원의 자본주의 세상은 본질적으로 인류가 살아가는 토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잠에 들어 의식이 우주를 떠도는 과정에서 회복되는 체력, 서로를 응원하는 말에서 솟아오르는 에너지, 멀리 떨어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과 같은 요소들은 눈에 보이거나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실체로 느끼는 어떠함인 것이다.

 

여전히 별들은 빛나지만, 그 너머의 어둠은 더 깊다. 그 어둠이야말로 별들을 존재하게 하는 배경이자 우주가 숨 쉬는 공간이다. 데이비드 봄이 보았던 세계를, 우리도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