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노트

마가렛 대처 분파주의의 악령이 아직도...

신밧드의 모험 2025. 3. 7. 21:22

마가렛 대처 (임기 1979 - 1990)

 

영국을 갈갈이 쪼개 놓은 마가렛 대처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마가렛 대처 총리는 영국을 통치하며 영국 사회에 강력한 자신의 이념을 불어 넣은 여성이다. 대처의 이러한 이념은 훗날 대처이즘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영국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회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지금의 세계는 거시적으로는 사실상 로마와 미국 문화의 연장선 안에 있다고 말하는데 특히 사회제도와 관련되어서는 영국의 대처이즘의 영향이 크게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대처가 정치에 발을 들이고 처음 맞닥들인 도전은 석탄 노동자들의 파업이었다. 대처는 이들에 대한 빠꾸없는 탄압으로 일관하며 무력으로 노동조합을 해산시키고 부글부글 끓는 노동자 계층의 목소리를 원천 차단하였다. 국가에서 서민들에게 나누어주던 임대 주택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게 하여 주거 불평등이 더욱 심해졌고 각종 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공기업들을 민영화하여 정치와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이렇게 마가렛 대처는 필요시 탱크를 동원 해서라도 반대파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는데, 그녀의 외골수 같은 정책들은 영국의 시민들을 부자와 가난한자, 엘리트와 저교육자, 자본가와 노동자, 영국 순혈주의자들과 이민자들의 분파를 더욱 심화시켰다.

 

 

대처이즘은 '나만 잘 살면 돼' 주의 

 

2025년 현재 한국에 있는 우리들도 이런 생각에 익숙하다.

"도태되는 사람들까지는 나는 잘 모르겠고 일단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잘나가야 사회가 산다" 

이러한 생각은 얼핏 정당해 보이기까지 한데 그 사상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20세기 후반 대처 총리의 태도와 정확히 닮아 있다.

 

대처이즘은 강력한 현실주의적 관점의 국제관계론을 지지하여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논리를 정당화 하였다. 자연스레 사회의 기득권층은 더 많은 기회와 부와 권력을 누리게 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딛고 있는 '권리의 운동장'을 한 뼘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자 하는 상 꼰대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그래서 세월이 조금 더 흐르긴 했지만 영국에서 브렉시트의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은 현상이다. 보수파들은 EU 탈퇴를 지지하고 서민들은 EU 잔존을 지지하는 시위를 티비 생중계로 보면서 나는 영국이 과연 대처의 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얼핏 우리는 미국의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능력과 자유주의 경쟁에 기반한 노력의 선물이라고 미화하여 그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두고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을 그 분파로 키우고자 열심히 자녀의 학업에 매질을 하고 있다. 

 

 

약육강식의 세계

 

그래도 세계는 공동의 번영을 꿈꾸고자 UN 으로 시작하는 다양한 국제기구들을 만들어 인류는 더 큰 가치를 함께 꿈꾸고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지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나도 청년기를 각종 UN 기구가 출범하던 그 시절을 보내면서 국제질서가 그래도 세계의 경찰 미국의 보호 아래 UN 이라는 국제법을 지켜가면서 굴러가는, 이상주의 국제관계론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착각을 해왔었다.

 

 

마치 성선설 성악설과 같이 두 정설은 끝 없이 대립하는 문제인 줄 알았더니 요즘들어서는 현실주의가 진리이고 이상주의는 허울 뿐이었다는 생각으로 많이 기울어졌다. 아니 철이 든 것일 수도 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풍요로웠던 20세기가 끝나고 지금의 세계는 너무도 황폐화 되었다. 전쟁, 기아, 질병, 재해가 세계 어느곳 안전지대 없이 숨통을 쥐어오고 기상이후 현상이 가속화되며 곡식의 소출량은 예전과 같지 않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사막화되며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이 줄어드는데 반해 젊은이들이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는 폭증하고 있다. 이럴때 고개를 드는 것이 생존 우선주의, 즉 약육강식의 자원 쟁탈전인 것이다.

 

Make America Great Again ?? 

 

미국이 돈과 총을 가졌으니 깡패짓을 하는 건 피할 수 없다. 사실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전 세계의 우경화의 추세는 거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멜로니, 프랑스의 마린 르펜 같은 지도자들을 보면 그들이 미국의 American First 정책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일본의 아베, 터키의 에르도안도 그러하고 심지어 독일은 극우 정당의 지지도가 사상 최고로 솟아 오르고 있다.

 

바야흐로 각자 도생의 시대이다. 자랑스런 한국의 윤석열도 지금 궁지에 몰려 혼자 도생 할 궁리만 하고 있는 걸 보아라. 그러니 이 세상 누가 죄가 없어서 저 트럼프에게 돌을 던지랴 (던질 자격도 안 될 뿐더러 던졌다가는 젤렌스키 꼴 남)

 

이럴 때 일수록 시민들은 반 대처이즘의 새로운 vision을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소수의 권력층들만이 잘 먹고 잘 살 수 없도록, 가속화되는 기후 위기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들에게 한 표를 던져주는 것이 커다란 의미를 가지며, 한국에서 우리의 유기적인 실행들이 세계의 시민사회를 향한 하나의 작은 희망의 샘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